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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바리 <사피엔스>

아젤라스트 2016.12.06 15:31



이 책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6종 이상의 사람속(属) 중 왜 호모 사피엔스만이 오늘까지 살아남았으며,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조감한다. 어쩌면, '새가 높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전체를 한 눈으로 관찰'한다라는 뜻의 '조감'만으로는 조금 아쉽다. 새가 아니라, 저자의 표현처럼 지구 밖 먼 우주에 띄운 위성에서 지구를 관찰한다고 해야 이 책이 다루는 방대한 역사와 언어,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과학, 역사, 생물학의 스케일에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의 4부로 나뉘어져있다. 1부 인지혁명과 2부 농업혁명까지의 내용은 거의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역자(조현욱)의 말에 의하면 유발 하바리는 <총, 균, 쇠>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매우 크 질문들을 제기하고 여기에 과학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총, 균, 쇠>는 보여주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차이가 있다면 <총, 균, 쇠>가 사피엔스를 둘러싼 지리나 환경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역사와 현재를 설명했다면, <사피엔스>는 지리생태적 요인 보다는 책의 구성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언어('상호 주관'에 입각한 '상상의 질서')와 과학을 현재의 사피엔스를 있게한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돌연변이로 인한 인지혁명을 동력으로 삼아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렌시스 등 다른 인간에 비해 협력이 수월해졌고, 화폐, 제국, 종교, 자본주의, 과학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유발 하바리의 주장이 타당하든 말든(제국주의, 자원문제 등 논란이 될 이슈들이 있다), 논리가 맞든 안맞든 간에, 화폐제도, 제국주의, 종교, 자본주의, 과학 등의 발생 원리와 시스템을 통찰력 있게 정리하는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135억년의 인류사를 약 600쪽 분량으로 정리한 저자와 달리, 나는 600쪽 분량의 내용조차 간단하게 정리할 능력이 없다. 밑줄 그었던 몇 문장을 소개하며 독후감을 끝낸다. 





나는 이 사진을 보기 전까지 인류의 조상에 대해 생각하면 '원숭이'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르헨티나의 동굴에 찍힌 손바닥의 주인공은 '겨우'(이 책의 시간으로는 찰나에 불과하다) 9천년 전의 사람들이니까 이미 직립보행을 한지도 오래됐고 작물을 재배하며 정착생활을 할 때다. 그럼에도 이 생생한 손바닥을 통해 오늘의 나와 다르지 않은 손을 가졌구나라는 충격에 빠졌었다. 이들은 어떤 뜻에서 저렇게 손바닥을 남겨뒀을까. 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의 첫 대면은 어땠을까. 상상할 수 없는 까마득한 시간을 상상하고 싶었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내가 알기로 소설의 배경 중 가장 오래 전을 다루는 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 한 회사의 경제적 성공은 직원들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은행잔고의 액수로만 측정된다. (129쪽)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 욕망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다. 예컨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흔한 욕망을 보자. 이런 욕망은 전혀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침팬지 알파 수컷은 권력을 이용해 이웃 침팬지 무리의 영토로 휴가를 갈 생각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들은 피라미드를 짓고 자신의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데 재산을 썼지만, 누구도 바빌론에 쇼핑하러 간다거나 페니키아에서 스키 휴가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173쪽)



프랑스 혁명 이래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물론 이것도 저자에 의하면 '상상의 질서'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필연적으로 평등에 금이 간다. 1789년 이래 세계 정치사는 이 모순을 화해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로 볼 수 있다. (237쪽)

* 저자는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종교라고 한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는 엄청 나게 많은 추종자들이 있지만 경전이 가르치는 교리를 따른 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열심히 벌어, 열심히 소비하라는 자본주의의 교리는 실천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대서양 노예 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486쪽)

* 우유 만드는 기계, 고기 만드는 기계로 바뀐 소의 삶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생각해보았는가?



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자의 자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짜이고 풀어지느냐에 대해서,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기술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560쪽)


다 옮기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밑줄을 많이 그은 책이다. 2016년 나의 베스트 책 후보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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